반도체 기사에 HBM이라는 세 글자가 거의 매일 나옵니다. 풀어 쓰면 High Bandwidth Memory, 우리말로는 고대역폭 메모리입니다. D램 여러 장을 수직으로 쌓고, 실리콘을 위아래로 관통하는 통로로 연결해, 한 번에 넓은 폭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게 만든 메모리입니다. 새로운 종류의 칩이 아니라 D램을 쌓고 연결하는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이 글은 일반 D램과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 TSV와 인터포저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그리고 점유율 기사에서 D램 순위와 HBM 순위가 왜 서로 다르게 나오는지를 표준 문서와 공개 집계 기준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규격 수치는 JEDEC이 공개한 표준 발표문, 점유율 수치는 카운터포인트 리서치가 공개한 분기별 집계(2026년 8월 확인) 기준입니다. 회사별 우열이나 시장 방향을 말하는 글이 아닙니다.
1. 이름을 그대로 읽으면 절반은 풀립니다
| 단어 | 뜻 |
|---|---|
| High | 높은 |
| Bandwidth | 대역폭 — 한 번에 오갈 수 있는 데이터의 폭 |
| Memory | 메모리 |
여기서 헷갈리기 쉬운 것이 대역폭과 속도의 차이입니다.
| 개념 | 도로에 비유하면 |
|---|---|
| 속도(클럭) | 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 |
| 대역폭 | 차선이 몇 개인가 |
HBM이 바꾼 것은 주로 차선의 수입니다. 통로를 크게 넓혀서 같은 시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옮깁니다. JEDEC도 HBM 표준 문서를 소개하면서 「고속·저전력 동작을 위해 넓은 인터페이스 구조를 쓴다」고 설명합니다.
2. 일반 D램과 무엇이 다른가
두 가지가 다릅니다. 쌓는 것과 연결 폭입니다.
| 구분 | 그래픽용 D램(GDDR6) | HBM |
|---|---|---|
| 배치 | 기판 위에 평평하게 나란히 | 위로 쌓아 올림 |
| 표준 문서에 적힌 칩 구성 | JEDEC GDDR6 규격(JESD250D)은 16비트(x16) 듀얼 채널 소자를 규정 | JEDEC HBM 규격은 1,024비트 인터페이스에 독립 채널 8개(JESD235B 발표문) |
| 프로세서와의 거리 | 상대적으로 멀다 | 바로 옆에 붙인다 |
| 차지하는 바닥 면적 | 넓게 퍼진다 | 위로 쌓아 좁아진다 |
1,024비트라는 숫자가 핵심입니다. 한 칩이 16비트 폭으로 연결되는 구성과 견주면 통로를 수십 배로 넓힌 셈입니다. 다만 통로를 그렇게 넓히려면 연결선을 그만큼 뽑아야 하고, 평평하게 늘어놓아서는 자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쌓습니다.
3. TSV와 인터포저 — 두 단어면 됩니다
기사에 자주 나오는 두 단어인데 뜻은 단순합니다.
TSV(Through-Silicon Via, 실리콘 관통 전극)
칩을 여러 장 쌓아 올렸을 때 위아래를 바로 잇는 수직 통로입니다. 실리콘에 구멍을 뚫어 통로를 냅니다. 옆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므로 신호가 지나는 거리가 짧아지고, 통로를 아주 많이 낼 수 있습니다. JEDEC 표준 문서도 HBM을 「TSV로 쌓은 D램 묶음」으로 규정하고, 몇 단까지 쌓을 수 있는지를 세대마다 명시합니다.
인터포저(Interposer)
쌓아 올린 HBM과 프로세서를 같은 기판 위에 나란히 올려 잇는 중간 판입니다. 실리콘으로 만든 이 판 위에 아주 촘촘한 배선을 넣어 넓은 통로를 연결합니다. 프로세서와 메모리를 위아래로 쌓지 않고 옆에 붙여 잇는 방식이라 2.5D 패키징이라고 부릅니다.
| 단어 | 하는 일 |
|---|---|
| TSV | 쌓인 D램끼리 위아래를 잇는다 |
| 인터포저 | HBM과 프로세서의 옆을 잇는다 |
HBM이 어려운 제품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칩 하나를 잘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장을 정확히 쌓고 붙이는 공정이 함께 필요합니다.
4. 왜 AI 가속기와 묶이나
AI 연산에서 자주 걸리는 병목은 계산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를 연산 장치까지 얼마나 빨리 넣어 주느냐입니다.
연산 장치가 아무리 빨라도 → 데이터가 늦게 도착하면 → 기다린다
AI 모델은 다뤄야 하는 값의 양이 매우 큽니다. 이때 메모리 통로가 좁으면 연산 장치가 놀게 됩니다. 통로를 넓히는 것이 곧 성능이 되는 구조이고, HBM이 하는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그래서 연결이 이렇게 이어집니다.
| 단계 | 내용 |
|---|---|
| ① | AI 가속기 한 장에 HBM이 여러 개 붙는다 |
| ② | 가속기가 많이 팔리면 HBM 주문이 함께 늘어난다 |
| ③ | HBM을 만드는 회사의 매출과 이어진다 |
실제 규모로 보면 이 연결이 작지 않습니다. 엔비디아가 2026년 2월 25일 발표한 회계연도 2026년 연간 실적에서 전체 매출은 2,159억 달러(전년 대비 65% 증가), 그중 데이터센터 부문이 1,937억 달러(68% 증가)였습니다. 전체의 약 90%가 데이터센터 부문에서 나온 셈이고, 이 부문의 제품이 AI 가속기입니다.
5. 세대 — JEDEC 표준 문서에 적힌 것
HBM은 JEDEC이라는 반도체 표준화 단체가 규격을 정합니다. 회사가 마음대로 이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세대마다 표준 문서 번호와 발표문이 있습니다.
| 세대 | 표준 문서 | 발표 시점 |
|---|---|---|
| HBM | JESD235 | 2013년 10월 |
| HBM2 | JESD235A | 2016년 1월 12일 |
| HBM2 (개정판) | JESD235B | 2018년 12월 17일 |
| HBM3 | JESD238 | 2022년 1월 27일 |
| HBM4 | JESD270-4 | 2025년 4월 16일 |
세대 이름이 하나여도 표준 문서는 여러 판이 나옵니다. HBM2는 2016년 JESD235A로 나온 뒤 2018년 JESD235B로 갱신됐습니다. 앞에서 「1,024비트 인터페이스에 독립 채널 8개」의 근거로 든 것이 이 JESD235B 발표문입니다.
각 발표문에 적힌 수치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 항목 | HBM2 (JESD235A · 2016-01-12 발표문 기준) | HBM3 | HBM4 |
|---|---|---|---|
| 통로 폭 | 1,024비트 | 1,024비트 | 2,048비트 |
| 독립 채널 수 | 8 | 16 | 32(채널당 의사 채널 2개) |
| 핀당 속도 | 발표문에 표기 없음 | 최대 6.4Gb/s | 최대 8Gb/s |
| 한 묶음 대역폭 | 최대 256GB/s | 819GB/s | 2TB/s |
| 쌓는 층수 | 2·4·8단 | 4·8·12단(16단 확장 여지) | 4·8·12·16단 |
| 한 묶음 최대 용량 | 8GB | 64GB | 64GB |
표의 HBM2 열은 2016년 JESD235A 발표문 값이라는 점을 같이 봐야 합니다. JEDEC은 2018년 12월 17일 JESD235B 발표문에서 같은 HBM2를 스택당 최대 307GB/s · 스택당 최대 24GB · 핀당 2.4Gb/s로 갱신했고, 12단 적층까지 지원 대상에 넣었습니다. 그러니 256GB/s와 8GB를 HBM2 세대의 확정 규격으로 읽으면 어긋납니다. 같은 세대 이름 아래에서도 개정판이 나오면 값이 올라갑니다. 규격 수치를 옮길 때 세대 이름만이 아니라 문서 번호와 발표 시점까지 함께 적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세대가 올라가면서 바뀌는 방향이 표에 그대로 보입니다. 쌓는 층수가 늘고, 한 묶음 용량이 커지고, 통로 폭이 넓어집니다. HBM4에서 통로 폭이 1,024비트에서 2,048비트로 두 배가 된 것이 가장 큰 변화입니다.
중간에 E가 붙은 이름(HBM2E, HBM3E)도 기사에 자주 나옵니다. JEDEC이 표준 문서 번호를 붙여 발표한 세대 이름은 HBM · HBM2 · HBM3 · HBM4 네 가지이고(JESD235B는 HBM2의 개정판이라 새 세대가 아닙니다), E가 붙은 이름은 그 목록에 없습니다. 세대 번호가 바뀐 것과 같은 급으로 읽으면 어긋납니다.
6. 왜 뉴스에 계속 나오나
이유를 나눠 보면 네 가지입니다.
| 이유 | 내용 |
|---|---|
| 수요처가 한 곳으로 몰려 있다 | AI 가속기라는 분명한 최종 수요처가 있다 |
| 값이 높다 | 같은 D램이라도 단가 차이가 커서 매출 비중에 크게 반영된다 |
|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적다 | 쌓고 붙이는 공정 난이도가 높아 참여 회사가 제한적이다 |
| 국내 회사가 중심에 있다 | 국내 메모리 회사가 주요 공급사라 국내 기사에서 비중이 크다 |
두 번째가 점유율 기사에서 자주 문제가 됩니다. 값이 높은 제품이라 매출 기준 점유율과 물량 기준 점유율이 다르게 나옵니다.
7. 점유율 기사를 볼 때 헷갈리기 쉬운 것
HBM은 D램의 한 종류이지만, D램 전체 점유율과 HBM 점유율은 다른 숫자입니다. 실제로 순위가 뒤바뀝니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집계 기준, 2026년 1분기 매출 기준 수치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습니다.
| 회사 | D램 전체 | HBM |
|---|---|---|
| 삼성전자 | 38% | 21% |
| SK하이닉스 | 29% | 58% |
| 마이크론 | 22% | 21% |
같은 분기, 같은 기관, 같은 매출 기준인데 1위가 서로 다릅니다. 기사 제목의 숫자만 보고 두 값을 섞으면 결론이 반대로 갑니다.
분기가 바뀌면 숫자도 크게 움직입니다. 같은 기관의 HBM 매출 기준 집계를 분기별로 늘어놓으면 이렇습니다.
| 분기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 | 마이크론 |
|---|---|---|---|
| 2025년 1분기 | 69% | 13% | 18% |
| 2025년 2분기 | 64% | 15% | 21% |
| 2025년 3분기 | 56% | 23% | 21% |
| 2025년 4분기 | 57% | 22% | 21% |
| 2026년 1분기 | 58% | 21% | 21% |
한 해 사이에 10%포인트 넘게 움직였습니다. 어느 분기 숫자인지 확인하지 않으면 같은 회사를 두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세는 잣대도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2025년 2분기 HBM 점유율을 62%로 적은 자료가 있는데, 이건 다른 기관의 숫자가 아닙니다. 같은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집계인데 출하량(비트) 기준으로 센 값이 62%이고, 매출 기준으로 센 값이 64%입니다. 값이 비싼 제품을 많이 파는 회사는 매출 기준에서 더 높게 잡히므로 두 숫자는 원래 어긋납니다. 기준을 밝히지 않은 채 두 값을 한 문장에 섞어 쓰면 안 됩니다.
시점도 봐야 합니다. 2026년 8월 초 기준으로 카운터포인트가 공개한 HBM 집계의 최신 분기는 2026년 1분기입니다. D램 쪽은 2026년 8월 4일에 2026년 2분기 매출 기준 집계가 공개돼 삼성전자가 39%로 1위였지만, 같은 분기 HBM 집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최신 D램 숫자와 한 분기 앞선 HBM 숫자를 나란히 붙여 쓰면 그것도 어긋난 비교가 됩니다.
| 확인할 것 | 왜 |
|---|---|
| D램인가 HBM인가 | 순위가 다르다 |
| 어느 분기인가 | 분기마다 10%포인트 넘게 움직인다 |
| 어느 기관 집계인가 | 같은 분기도 기관마다 숫자가 다르다 |
| 매출 기준인가 물량 기준인가 | 단가 차이가 커서 결과가 달라진다 |
HBM은 D램을 쌓고 넓게 연결한 제품이고, AI 가속기라는 최종 수요처와 붙어 있어 뉴스에 자주 등장합니다. 구조를 한 번 잡아 두면 기사에 나오는 세대 이름과 점유율 숫자를 훨씬 덜 헷갈리게 읽을 수 있습니다.